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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임으로 눈뜨기/책, 읽어서 지구 열바퀴

[이스탄불의 사생아] 눈과 귀로 즐기는 '아슈레' 한 그릇

이스탄불의 사생아

눈과 귀로 즐기는 달콤한 '아슈레' 한 그릇

 

 

 

지인의 추천으로 읽은 책이다.

내년 터키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해서 권유받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역사를 망각하고 살아가는 무신론자에 탈이념적인 터키 소녀 '아시야'

미국 애리조나에서 아픈 역사를 지닌 민족의 딸로 그 뿌리를 찾아 터키로 온 

아르메니아 소녀 '아마누쉬'와 그들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1장 계피로 시작되어 18장 청산가리로 끝나는 소설은 -

끊임없이 터키 음식과 하나같이 독특한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마치 풀코스 식사를 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무려 573P의 장편소설이다.

 

 

 

 

 

 

 

억압받는 이스탄불 여성과

유쾌한 이스타불 여성 사이

 

 

 

이야기는 시작부터 충격적인 이스탄불의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하는데 -

'젤리하'라는 여인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길거리에 욕을 할 수 없는 

이스탄불 여인에 대한 강한 반발감을 표현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의 정숙한 여성의 황금 법칙 :

 

길거리에서 누가 괴롭히더라도 절대로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 

괴롭히는 자에게 반응을 보이거나 심지어 욕하는 여성은 상대의 감정을 더욱 북돋을 따름이다!

 

- 1장 계피 中 , 15-  

 

하지만 이런 보수적인 나라에 온갖 짜증섞인 비아냥을  지껄이는 19 소녀가

한국 사회에서도 쉬쉬하는 낙태를 혼자서 하러 가는 것, 역시 또 한번의 충격이었다.

 

이렇게 저자인 엘리프 샤팍은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젤리하를 포함한 수 많은 캐릭터들을 창조해내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터키와 아르메니아인 사이

한국과 일본을 보다.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오스만 제국이 잘나가던 그 시대에도 일본을 포함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랬던 것 처럼 -대량학살을 자행했고, 

아르메니아 민족 학살이라는 참극을 낳았다.

 

민족의 지울수 없는 아픔이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러한 아르메니아의 후손으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아마누쉬의 갈등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아마누쉬는 바세닉 고모가 자신이 책 읽는 것을 언제나 반대하는 이면에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깃들여있다고 느꼈다.

원시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구조적인 근거가 있는 두려움이었다.

지나치게 환하게 빛을 발하면서 무리에서 두드러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 오스만 정부 시절에 아르메니아인 중에서 작가와 시인, 예술가, 지식인들이 가장 먼저 제거되었다.

그들은 우선 '두뇌'를 제거한 후에 보통사람들을 제거하려고 했다.

 

...(중략)....

 

모든 책에는 잠재적으로 해로운 요인이 있으며 그중에서 소설이 특히 위험하다고 여겨졌다.

허구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것이 유동적이며 변덕스럽고 달도 뜨지 않은 사막의 밤처럼 놀라움이 있는 이야기의 우주로 잘못 들어갈 수도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넋을 잃는다. 바람이 바뀌고 나쁜 시간이 닥칠 때 무방비 상태로 있지 않으려면 

절대로 지나치게 멀리 떠나 있어서는 안되는 쓰리고 둔감한 진실을 망각하게 된다.

 

상황이 악화되지 않으리라고 순진하게 믿어봤자 소용이 없다.

상황은 늘 악화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살아야만 사람들에게 상상력은 치명적인 매혹이며,

언제나 침묵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언어는 독이 될 수 있다.

 

간신히 살아남은 자의 후예로서 여전히 책을 읽고 생각하기를 원한다면, 조용히, 조심해서 내성적으로 해야한다.

인생에서 높은 열망을 품어야만 한다면, 힘을 뺴앗기고 보통 사람 정도의 힘만 남은 것처럼 열정과 야망을 줄이고

단순한 욕망을 품어야 한다. 

 

   - 제 6장 피스타치오 中 , 157P -

 

 

아르메니아 보단 우리가 상황이 좀 나을지도 모른다.우리에겐 국토가 있고, 그들보다는 훨씬 큰 국가니깐.하지만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서 늘 가슴을 치는 아픔을 겪어온 민족의 자손으로서 -그녀가 갖는 피해의식과 지나치게 역사와 기억에 집착하는 모습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그리고 아직도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는친일파 문제에 대해서도 '예니체리'라고 칭하며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가 정당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예니체리의 역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예니체리군은 오스만 국가에게 생포되어 개종한 기독교세대의 자손이었으며, 

자신의 민족을 무시하고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는 대가를 치러야지만 사회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었다.

예니체리의 역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모든 소수민족과도 연관이 있다.추방된 자들의 자손이여! 다음의 오래된 질문은 스스로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이 역설과 관련해서 당신의 위치는 무엇이 될 것인가? 

예니체리군의 역할을 받아들이 겠는가?

당신이 속한 공동체를 버리고 터키인들의 말대로 우리 모두 전진할 수 있도록 그들이 과거를 교묘히 피하게끔 놔두고 그들과 평화로이 지내겠는가?

예니처리군의 역설은 서로 충돌하는 두 존재 사이에서 갈라지고 있다.한편으로는 과거의 잔여물(부드러움과 슬픔의 자궁, 부정과 차별의 의미)이 쌓여간다.또 한 편으로는 약속된 미래(성공으로 장식된 피난처, 과거 가져보지 못했던 안정감, 대다수에 합류하고 드디어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편안함)가 반짝인다.

- 제 6장 피스타치오 中 - 

 



같은 민족임에도 과거를 끊임없이 기억해내려는 자들과 - 망각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가는 자들에 대한 내부적인 갈등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혼한 아르메니아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미니 사이에서자라며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미국계 아르메니아인의 이중성과는 또 다른 

이질적인 불안감과 문제의식을 갖고 살아오던 아마누쉬라는 인물이 바로 -

오늘날의 뒤섞임 문화를 극명히 보여줬다.

 

 

 

 

 

 

 

기억과 망각

 

그리고 뒤섞임

 

 

 

어떤 사과의 목적을 안고 떠나온 여행은 아니었지만 -

진실에 직면했을 때 , 가해자의 진심어린 미안함 같은 것을 기대했을 텐데..

현실은 역시 달랐다.

 


“아마누쉬의 가족이 이스탄불에 살았던 거 모르지그들은 1915년에 온갖 고통을 겪어야만 했어

추방당하는 중에 많은 사람이 죽었어배고픔에 피로에잔혹함에…”순전한 침묵아무 논평도 없었다

아시야는 알코올중독 만화가의 걱정 어린 시선을 느끼며 더욱 밀어붙였다.

 

“아마누쉬의 증조할아버지는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처형당했어왜냐하면,
아시야가 고개를 돌려 아마누쉬를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은 아마누쉬보다는 무리에게 향한 것이었다.
“지식인이었기 때문이지!
아시야가 천천히 와인을 마시며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르메니아 공동체에 아무 지도자가 없도록 지식인들이 가장 먼저 처형되었던 거야.
곧 침묵을 깨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 일은 없었어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걸.
초민족주의 영화의 비민족주의 시나리오작가가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는 파이프를 한 모금 피우고 소용돌이치는 연기 중에서 아마누쉬의 눈을 바라보며 동정어린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네 가족에게는 유감이야조의를 표해그래도 그때가 전쟁 중이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해

양쪽 사람들이 다 죽었어아르메니아 반군의 손에 죽은 터키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상대편 이야기는 생각해봤어생각해본 적이 없을걸터키 가족의 고통은 어땠는데

전부 비극적이지만, 1915년이 2005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

그때는 시대가 달랐어당시는 터키국가도 아니고 오스만 제국이었다고근대 이전의 시대에 벌어진 근대 이전의 비극이었던 거지.
(
)


“아르메니아인들의 주장은 과장과 왜곡에 기초한 거야

우리가 아르메니아인을 이백만 명이나 죽였다는 주장까지 하더라고

정신이 제대로 박힌 역사학자라면 절대로 그런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한 명만 되도 많은 거지.
아시야가 되받아쳤다.

초민족주의 영화의 비민족주의 시나리오작가가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아시야해줄 말이 있어악명 높은 세일럼의 마녀사냥에 대해 들어봤지

마녀라고 비난된 거의 모든 여자들이 비슷한 고백을 하고 동일한 시간에 기절하는 것을 포함해서 

공동의 징후를 보였다는 점이 흥미롭지… 그들이 거짓말했을까아니지그들이 그런 척했을까아니야그들은 집단히스테리였던 거야.

“그게 무슨 뜻이죠?
아마누쉬가 화를 거의 억누르지 못하고 물었다.
“그래젠장할 무슨 소리야?
아시야가 화를 참지 않고 말했다시나리오 작가의 우울한 얼굴에 피곤한 미소가 떠올랐다.


“집단히스테리라는 게 있어아르메니아인들이 히스테리라거나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그건 과학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야집단이 개개인의 믿음과 생각심지어 신체반응까지 조정할 수 있다는 거지.

 

어떤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면 그 이야기를 내면화하게 되지그때부터 그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거야

더 이상 이야기도 아니고 현실이 되는 거야바로 당신의 현실이! 


- 10
 '아몬드중에서 

 

 

 

 

 

 

위에 대화는 처음엔 담담하게 - 중립적인 감정으로 다가왔지만,

이야기의 화자가 나와 일본인으로 바뀐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자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하지만, 역사적 팩트나 사과와 화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서

아마누쉬와 아시야가 자연스럽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친구가 되어가는 모습은 .. 좋았다. 

그리고 아마누쉬와 아시야가 한 조상의 자손이기도 했으니깐.

 

근데 이야기 끝에 

아시야의 아버지가 바로 자신의 삼촌이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 뜨악.....

( 먼가 14장 쯤 부터.. 설마..설마 했다;; 작가님이 드라마 좋아한다더니, 거기도 막장인거유? ;; 하하

 

 

 

노아의 푸딩 '아슈레' 한 그릇 뚝딱! 

 

 

 

 

 

 

 

책을 읽는 내내 터키 음식이 먹고 싶었다.

그리고 궁금했던 챕터의 제목이 야슈레라는 디저트의 재료라는 걸 알고는 소름이 끼쳤다;;

작가님 천재...;; 하하..

21C 다문화가 화두로 던져진 오늘날,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보여주고 또 많은 질문을 던졌던 소설이였다.
맛나게 잘 비빈 비빔밥을 좋아하는 우리나라도 - 달콤한 아슈레를 즐기는 터키인들도 - 모두 잘 해낼 수 있겠지....???

 

같은 여자로서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또래 여자아이로서 공감하게 하는 

사랑스러운 글이 너무 많았는데, 

맛있는 음식도 따스하고 사랑스럽고 격하게 공감가는 캐릭터들도, 순간도 너무 많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말을 절감하며

다시 역사 공부를 시작하려는 요즘 - 서구가 아니라 우리나라 외 동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터키로 가서 그 맛난 음식들을 다 먹고 오고 싶어 졌다. ㅎㅎ

 

 

그리고 기억 속에서는 잊혀져도 삶과 문화에 스며 들어가는

역사와 과거가 어떻게 오늘과 미래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상적이었던 서평의 구절과 함께 글을 마친다.

 

 

 

 

 시간이라는 지우개가 기억과 생존자를 지워나갈 때 

과거의 역사가 살아남은 자들의 삶에서 

어떻게 체화되어 드러나는지를 담담히 보여주는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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