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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영화 Her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영화 Her






서툰 당신을 안아줄 이름 'her'


이라는 이름에 무색하게 이 영화는 사랑만큼이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던 것 같다.



그가 사는 2025년의 LA라는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가짜와 진짜의 모호한 감정 속에 사는 '편지 대필가'를 직업으로 한 시어로즈가

인공지능을 갖춘 OS1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이야기인가... 했다.

하지만 일단 ! 적막한 도심과 숨막히는 일상 속에서도 빛나던 남주 호아킨 피닉스의 존재감!!

그리고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영상들 ㅠ






영화 Her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할까...

막막하기만 하다.


정말 간만에 쓰는 영화 리뷰지만 - 이렇게 먹먹한 영화는 또 간만이구나.

그게 영화가 가지고 있는 결말의 모호함이나 - 설정이 갖는 낯설음 - 같은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너무나 쓸쓸하고 먹먹한 정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 - 으로 시작해 존재 - 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였던 것 같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이란 밀란 쿤데라의 책이 떠올랐다.


( 미래의 세계- 2025년 LA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이혼을 앞둔 '시어도어'라는 주인공이 -

운영체제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



나는 영화의 첫 장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

클로즈업 된 시어도어가 달콤한 편지를 읽어내려가며 시작한다.


시처럼 아름답고 - 한 마디 한 마디 따뜻한 글들을 -

노래처럼 읊조린다. 그는 마치 시인처럼 , 작가처럼 보였다 .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서늘함과 쓸쓸함이 느껴졌던 건 -

그의 생기없고 영혼없어 보이는 눈망울 때문이었다.



그리고 금새 그 것이 '진심'이 아닌 그저 그의 직업이었음을 알아차렸다.

손글씨 편지 회사에서 대필가로 일하는 시어도어 -





공허한 눈빛 그대로 퇴근하는 길에 시어도어는

우연히 본 광고를 보고 최초의 인공지능 운영체제 OS1를 구매한다.



OS1은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그의 목소리, 생각, 취향과 성향을 단 번에 분석해

그에게 가장 적합한 운영체제로 셋팅되어 시작된다.

그리고 맨 처음 이름을 묻는 그에게 '사만다'라는 이름을 100만분의 2초 만에 만들어 낸다. 


처음엔 이런 컨셉이 섬뜩했고 황당하기 그지없었다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체라니. 

하지만 사만다는 부드럽고 섬세했고 - 따뜻한 마음과 유머까지 갖춘 완벽한 존재로서 시어도어에게 다가갔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친구가 내 애인이 내 가족이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데로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외로울 땐 내 마음을 금새 읽어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 힘든일은 들어주고 - 귀찮은 일은 좀 해주고 -

그럼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영화 속 사만다가 정말 그러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텅 - 빈 것 같던 시어도어의 마음은 조금씩 녹아들어갔고,

무미건조한 일상도 - 1년간 가슴을 짓눌러왔던 이별도 결심했다 .

그리고 그를 힐링해주는 사만다에게 운영체제라는 편견을 뛰어넘어 연인이 되었다.




'사만다'는 운영체제로서 감성과 학습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이다.

때문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감정을 확장하고 , 학습으로 지적 수준을 높여가고,

호기심까지 갖춰 나중에는 다른 OS끼리 대화를 나누고...


그리고 사만다라는 이름을 짓는데만 100만분의 2초가 걸린 것 처럼,

OS들에게는 인간과의 다른 시간적 개념을 갖고있다. 

그래서 그녀는 시어도어가 잠들어있는 시간을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는 욕망을 가진 존재로 스스로를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시어도어와 사랑에 빠지며 '몸'을 가지고 싶어했다.

그와 정서적 교감으로 사랑을 나누어왔지만 - 학습을 통해 본 보통 인간들의 사랑방식은 아니니깐 -

불안감으로 자신을 대리할 여자를 불러 시어도어와 대리관계를 맺게하기도 한다.

사랑을 제대로 모르는 인간처럼 - 그런 인간에게 사랑의 감정을 학습한 사만다도 사랑에 서투르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 사만다는 나쁜여자가 된다 ㅎㅋ

8000명이 넘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 중에 6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다.

물론 시어도어 만큼 사랑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여기에도 막장이 ㅋㅋ ;;)


시어도어가 사만다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데 고비였던 적이 있었다.

이혼 도장을 찍은 상대와의 식사날, 사만다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 당신은 언제나 진짜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신경쓰지 않는 

헛개비 같은 관계를 원하는 거라고. "





그녀의 말은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수도 있다.

그는 사랑으로 사만다와 이 과정을 극복했고 - 

사만다는 이 쯤부터 육체가 없이 오히려 시공간을 자유자제로 존재할 수 있음에 기뻐했고 -

누구나 꿈꾸는 - 완벽에 달콤한 사랑을 나눈다.


친구네 커플과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 

함께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느낀 감성을 섬세한 음악으로 만들어낸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엄청난 기회를 만들어 주며 그의 꿈을 이루는데 돕기도 한다.

말로도, 사진으로도 다 할 수 없이 가슴 먹먹하게 아름답고 이상적인 사랑이... 

너무나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관계가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 앞에 말한 것 처럼 사만다는 8000명이 넘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다른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다. 아마 그건 육체적 사랑이라는 한계가 아닌 존재 그 자체의 한계 때문이었을꺼다.

숨죽이며 새벽내내 잠이 깨길 기다렸던 사만다는 - 울먹이는 목소리로 시어도어를 깨워 흔들곤 말한다.

사랑한다고.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인간에게 잠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밥을 먹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하는 것은 감정으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잠은 - 그럴 수가 없다. 그녀는 피로함도 아마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그렇게 생기넘치게 시어도어를 배려하고 응원하고 사랑했을 것이다.


한계. 어쩌면 이 한계가 인간과 운영체제 또는 신과 같은 것과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큰 잣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늘 - 이 한계를 인지하는 것이 현실적인 것 같다.

현실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행복의 잣대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시어도어는 사만다와 너무나 행복한 한 때를 보내왔으니깐.


하지만 - 불꽃같았던 사랑이 지고 또 다시 한계에 부딪힐 때면 -

그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전처와의 싸움에 입을 꼭 다물고 피하기만 했던 시어도어처럼..

그리고 자신과 현실 세계를 떠나버린 사만다처럼  그 역시 이 세상을 포기하려고 하는 것 처럼.

( 물론 열린 결말이었지만... 그는 에이미와 함께 세상을 떠나거나 - 이전과 같이 먹먹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



너무나 기괴하고 해괴한 설정이었기 때문에 경계했지만 - 

너무나 꿈결같은 사랑이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납득하고 그들을 응원해버린 나.

그래서 허무하기 짝이었는 결말의 여운이 너무나 깊고 슬프고 먹먹하게 다가왔다.






뭐가... 뭐가 ... 잘못된걸까.

내 옆에 사랑을 바라본다.



내가 먹고싶어했던 우유빙수가 아니라 - 얼음빙수를 먹을 수 밖에 없었고,

내가 맘에 들어했던 그림들을 깊게 공감해주지는 못한 사람이라 사만다와 같은 똑똑이들에 비해 엄청 부족하다.  

하지만 헛 점 많은 두 인간이 부족한 서로를 이해하며 아껴온 마음들 -

그 마음들을 켜켜이 쌓으며 함께 묵묵히 걸어온 그 시간들이 보였다.



그리고 문득 들었던 생각.

시어로즈는 그냥 또 다른 나를 사랑했던건 아닐까?

.....


어느 날 자기처럼 허공을 쳐다보며 각자의 운영체계들과 

대화하며 걸어가던 사람들을 쳐다보던 시어도어의 표정이 생각났다.

....


가짜 감정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가 써왔던 아름다운 편지들이 모두 가짜 감정은 아니었으니깐.

의뢰인의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살펴서 전하고자 한 감정을 더 잘 전달한 거니깐,

분명 진심은 담겨있었다. 



그럼에도 그 것은 가짜여야 한다.... !!! 라고 생각한다.


..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니깐. 


..


불완전을 극복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

그런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면 - 공허하거나 가짜로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짜라고 말해버리기엔 -

사만다와 시어도어의 사랑에 ... 너무 진실된 울림이 있다는 것이 슬프다.

다시 돌아보고 또 돌아봐도 아프고 또 아픈 사랑이다. 

어떻게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지??? 미친 감독... 미친 배우들 ㅠ..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지녔던 사랑스런 사만다가
영화의 긴장감과 흥미를 끝까지 끌어줬다는 생각에 누군지 너무 궁금했다.

근데 그 목소리를 연기한게 바로 '스칼렛 요한슨'이라니....
이 작품으로 로마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고... 역시 스칼렛 요한슨 ㅠ
사랑합니다...ㅠ ^ ㅠ !!!




스파이크 존슨.

그는 음악, 영상으로 감정을 끌어내는데 탁월한 감독인 것 같다.

다른 작업이 궁금했고~ 그의 단편 영화 하나를 발견했다.




<I'm here> 이라는 작품인데

그가 설정한 미래 가상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뿌리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인간과 기계 간의 감정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

그의 작업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아직 다 보진 않았지만 주인공인 로봇 캐릭터가 너무 사랑스런 -

하지만 매우 슬플 것 같은 작품!!


시간나면 봐야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