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레임으로 눈뜨기/영상, 시공간 새롭게 읽기

제 15회 전주국제영화제 _ 무드 인디고, 프랑스 판타지 드라마♥




5월 황금 연휴-
일할꺼란 예상과 달리 휴진이라는 소식에 들뜬 마음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세월호의 충격이 가시질 않은 상황에서
들뜬 여행을 갈 수 없다는 생각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했다.

하지만, 매일밤 눈물을 쏟고 분노하며-
거의 우울증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고 있는 지금..
내게 힐링이 필요하다고 판단- 안테나와 전주로 떠났다.

좋아하는 영화나 보며 이야기를 하는게 우리의 목적이었고-
술이나 시끌벅적 거한 호사를 누리지는 말자는 어느정도의 합의 하에 떠났다.




미숙한 준비로 우여곡절 끝에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무드인디고'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영화 시작 5분 만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터널 선샤인, 수면의 과학.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에 탑으로 손꼽히는 미셸 공드리의 영화라니!!
전주에 꼭 가야만 했던 확실한 이유가 있었기에-
부산 시내를 시속 100km를 달려 사상초유의 택시비를 내고 전주를 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무드 인디고(mood indigo)는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이라는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삶의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있는 이 영화의 제목엔 '세월의 거품'이라는 제목이 맞긴하지만,
왠지 노숙하고 촌스럽잖아...
공드리표의 환상적이고 공상과학적인 영화 느낌을 살리기엔 무드 인디고가 더 좋은 것 같았다.
무드 인디고는 소설 '세월의 거품'의 미국판 제목명이라고 하는데-
왜 무드 인디고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잠깐의 검색을 통해서 짐작한 것은..
듀크 엘링턴의 노래 무드 인디고와 관련있지 않을까 하는 것.

영화 전반에 깔리는 듀크 엘링턴의 음악이 영화의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는데-
음악 하나하나 너무 좋았던 영화여서 나중엔 OST만 따로 포스팅 해봐야겠다!





당혹스러웠던 2층짜리 대형 상영관에 사이드 자리였지만,
영화는 시작부터 기발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색감으로 관객을 강렬히 끌어당겼다.

한 눈에 부유한 놈팽이(?!)임을 알 수 있는 주인공 콜린의 집에서 부터 영화는 시작되는데,
프랑스 스러운 재즈가 한 껏 울려퍼지며- 한 타자기 치는 공장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삶이란게 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자로 잰듯 반듯하게 줄지어 앉아있는 직원들이 책상 위에 놓인 타자기에 한 구절씩 찍어내며
마치 누군가의 인생을 조립하듯- 그렇지만 정교하게 짜맞춰지지 않은 뒤죽박죽의 삶인 이유가-
이런 공장에서 찍어내기 때문이라는... 그런 느낌(?!)

여튼 그리고 비쳐지는 콜린의 집은
그를 위해 요리하는 셰프 친구가 등장하고-
TV 속 남자가 변호사겸 셰프를 맡고 있는 그에게 1:1로 요리를 가르쳐주며-
흰 생쥐가 또 하나의 집을 구현해 함께 살고 있고-
재즈를 치면 각자의 곡에 맞춰 칵테일이 제조되는 피아노도 있다.
친구에게 악수를 하면 손목이 기계처럼 돌아간다거나
(악수하기 귀찮은데 그냥 잡고만 있으면 돌아간다 ㅋㅋ)
초인종이 울리면 초인종이 살아움직이면서 바퀴벌레처럼 기어다니고-
때리면 제자리로 간다거나, 짜증나서 세게 찍으면 여러 마리의 초인종 벌레로 쪼개졌다 합치는 모습 등-

단 하나의 디테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다.




공드리의 영화는 현실 속에 시간, 공간은 물론 사물의 형태 역시 
기하학적으로 무너뜨리고 변형시키고 과장시키는 기발한 연출력의 소유자다.
그의 영화적 소재, 전개방식 등등 모든 것이 좋지만-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 그의 상상력이 좋다.

마치 그는 매번 세상을 하나 창조해내는 것 같다.
조물주 처럼.
하지만,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 가장 보편적인 '사랑'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의 영화가 더 사랑받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 같다.




돈 버는 걱정도 없는 콜린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는 것 만이 오로지 삶의 숙제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드디어 만나게 된 그의 연인 클로에와 결혼에 골인하지만-
행복한 시간도 잠시, '폐의 수렴'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그녀를 낫게 하기 위해서-
그는 갖은 노력을 하다 재산을 모두 탕진하게 되고- 일자리를 찾아 다니며 험한일을 하게되기도 하고-
그러다 결국은 그녀를 무덤에 묻고야 마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토록 달콤한 영화였는데-
마지막은 새드 앤딩이라 슬펐지만..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흘러나오는 음악이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냥 다 필요없고, 그녀를 사랑해 달라고.
사랑이 제일 중요한거라고..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느낀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보내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불행과 고통을 함께 버텨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
배우자 임을 가슴 깊이 새겼다.





세월의거품
카테고리 소설 > 소설문고/시리즈
지은이 보리스 비앙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년)
상세보기



프랑스 소설의 초현실주의의 걸작으로 불리는-
보리스 비앙의 원작도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재즈 음악가이자 비평가, 소설가 등등 당대 프랑스 문학계의
전설적인 존재였다고 하는데-
이 책을 영화화한 영화를 보고 화가 나서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공드리의 영화는 분명 좋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글을 썼는데도-
영화의 10%도 이야기하지 못한 것 같다.

좋은 작품들의 공통점은-
또 다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그래서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글 쓰는 것이 두려워진 요즘-
내게 쓰지 않으면 못견딜 만큼의 기쁨과 생각과 에너지를 준-
'무드 인디고'를 만든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오늘 하루를 끝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