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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정길 위에서,/부산, 투박함과 세련됨 사이

'Today I…' 지금의 나는_ 구금란 한충석 2인 전 [Pop Busan Reporter]



등록일자 : 2010-02-16
 


 쏟아지는 신간들 속에서도 가끔 나는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어 읽기를 좋아한다. 몇 해전 읽었을 때 와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는 명작들,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랑스러운 꼬마, ‘제제’를 좋아한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선 제제가 밍기뉴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자신의 마음 속과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또, 늘 악마라고 손가락질 당하며 자신이 없어져야 될 존재라고 생각하는 제제가 뽀르뚜가 아저씨와 처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오늘’을 만들어 가는 모습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 ‘한충석’ 작가는 자신의 얼굴을 캔버스에 담으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가다.



‘쌈’의 정돈되지 않은 듯한 먹색 벽에 놓인 동양화 풍의 회화 그림들은 또 한 명의 제제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비록, 말로서가 아닌 그림으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 또 하나의 ‘밍기뉴’에게 매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하루하루의 기분과 생각들을 나누고 있음이 분명했다.

▲ 한충석씨의 작품 ‘자기 계몽’.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화 재료와 서양화 재료를 접목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평범한 하루를 이야기 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그림에 훤히 보이는 답변을 해주었다. “ 그냥 가끔 사람들 만나러 나가고, 보통 집에서 좋아하는 책 읽고 영화보고 음악 듣고 키우는 화분에 물주고 작업 활동도 하고…… 그게 다에요.“ 조금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이야기 하는 그의 모습에 나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단순히 나열된 단조로운 일상과 달리, 그의 그림에는 깊이가 묻어났다. 특히나 마음에 쏙 들어왔던 두 눈을 고요히 감은 채 꽃 잎에 휩싸인 그림을 보고 있자니 마음 속 거울을 들여다 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 최근 그는 주변의 가까운 것들과의 소통을 시도한 ‘자기 계몽’시리즈를 그리고 있다.


 한충석씨는 ‘정체확인’을 작업 모토로 활동해오고 있는 부산의 젊은 작가다. 작품 초기엔 주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왔다. “ 표정엔 그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유에 대한 느낌을 최대한 이미지 만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거죠.” 그는 조금씩 이런 작업의 과정을 통해 발견한 자신의 모습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다. 최근 발표한 ‘self-enlightment (자기계몽)’ 시리즈는 그 연장선이다. “ 내가 아닌 다른 관계들과의 마찰이 익숙하지 않아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들과의 소통을 다룬 작품 활동을 시작했어요.” 직접적인 타자와의 관계에서는 왠지 상처도 주게 될 것 같고 외적인 부분에서도 틀어진 게 많아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보여주고 알아가면서 고쳐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야 단조로움 속에서도 마음 속 깊숙이까지 울리는 그림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조심스럽고 느리지만 ‘진실함’이 묻어나는 한충석이라는 사람과의 인터뷰에서 받은 인상이었다. 그의 진실함이 그가 의도하건 하지 않았건 그의 작품 속 ‘개개인의 존재 가치’를 더욱 빛내주었다.


▲ 밝은 미소에 앳된 얼굴의 구금란씨는 ‘희망’을 전하는 작가이다.


 한 편, 전시장 한 쪽 편에서 만난 구금란씨의 작품은 나를 풀썩 주저앉게 했다. 전시장 한 쪽 바닥에 새끼손가락만한 높이에 형형색색에 각기 다른 크기로 빼곡히 의자가 놓여있는 작품은 절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이야기 속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하지만 ‘To Father’ 이라는 작품 명으로, 아기자기하고 산뜻한 작품과는 달리 깊고 조금은 무거운 의미를 지녔다. 그녀는 의자를 지친 하루를 기대어 쉴 수 있는 파라다이스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부서진 의자는 파라다이스 속에서 부서져 내리기도 하는 아버지들을 표현하는 게 아닐까? 지친 어깨로 집에 돌아가는 이 세상 아빠들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듯 했다. 그리하여 그녀가 꿈결 같이 만들어 놓은 의자들은 더욱 더 지친 자들과 부서지기 직전의 아버지들에게 따뜻한 쉼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지친 몸을 잠시 쉬어 갈 의자를 선사하는 작품. ‘To father’

 
 그 옆에 놓인 ‘Dreamer’s House’ 역시 꿈 조각을 엮어놓은 듯, 어여쁜 빛깔을 지녔다. 하지만 큰 건물들 위에 놓인 작은 옥탑 방들은 한편으로는 불안해 보인다. 그러나 그 불안감 속에서도 꿈꾸고 있는 그의 작품 속에서 ‘희망’과 내일에 대한 ‘의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 ‘Dreamer’s house’ (왼쪽 위 아래). ‘To father’ (오른쪽 위), ‘조우의 끈’(오른쪽 아래)



 작가로서의 길을 선택한지 겨우 반년이 되었다는 그녀는, 좋아하는 도예를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부딪혀야 될 여러 가지 문제들을 꺼내놓았다. 사실 그녀가 하고 있는 ‘작품도자’는 작품 당 가격이 높게 책정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녀 나름의 미래를 착실히 준비해나가고 있었다.“ 힘든 상황이지만, ‘조우의 끈’이 작품성으로 조금씩 인정받고 있어서 여기서 사용한 전통 꽃살무늬를 응용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해요.” 작가 경력으로는 초년생에 불과하지만, 그녀는 청주국제 공예 비엔날레에서 ‘공예의 미래상’ 수상 등 여러 공모전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그녀는 도자기가 가진 실용성과 접근 성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다. “ 고소득층만이 향유 하는 게 아니라, 중산층도 제 작품을 갖고 바라보면서 파라다이스를 꿈 꿀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할 거에요.“ 그녀의 작품이 꿈꾸는 자들의 집에 자리잡아 파라다이스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 졌으면 좋겠다.


※ 이 글은 2010년 부산은행이 운영하는 문화포털 사이트 '팝부산'의 문화기자단 2기로 활동하며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