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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임으로 눈뜨기/책, 읽어서 지구 열바퀴

사람을 지배하는 두 세상, 달과 식스 펜스

 


읽어 보지 않았지만, 늘상 그리움을 갖게했던 책.
'달과 식스펜스'.

소설 한 귀퉁이에서 불안한 영혼의 주인공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어 가곤 하던 그 책, 을 읽었다.



# Episode 1

소설은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 나레이터가 읊조린다.
죽고나서야 유명해진 한 천재의 불운한 삶을 우연한 인연으로 관찰하기 시작한 것.

스트릭랜드의 괴팍한 성격이나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때로는 너무 잔인하기 까지 한 그의 행동에
치를 떨기도, 냉소적이기도 하는 나레이터의 태도는 일반적인 우리의 반응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묘하게 스트릭랜드의 괴팍한 행동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주변 상황에 무심하고 , 과감하며, 때론 잔인하리 만큼 그의 마음 속에 이는 하나의 열정,
그 열정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에 동경심까지 느껴졌다.


이 것이 아마, 이 책이 수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현실 세계를 과감하게 탈출하여
온전히 자신의 내면의 영혼 세계와 자유에 집중하는 주인공을 통해 얻는
대리만족 말이다.

 

마지막엔,

문둥병이라는 육체적인 고통을 뛰어넘어 자신이 그토록 찾아 해맺던,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보일 듯 보이지 않던 세상을 그리고 나서,
최후를 맞이 한 그의 죽음_

그리고 그 완성작을 본 의사의 표현을 빌려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그 전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잇었다.
보지 않아도,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앞 선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그 작품이 위대할 지를 짐작하게 했다.

사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위대한 화가 폴 고갱의 이야기라는 것에 더욱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렴풋이 타히티의 여인들' 같은 그림들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에.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폴 고갱이라는 인물이 미술사에 남긴 존재감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소설이기에, 픽션이 가미되었고, 편하게 읊조리는 듯한 이 문체 마저도 치밀하게 짜여진 하나의 소설이고 픽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달과 식스팬스'는 서머셋 몸이라는 작가의 또 하나의 걸작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화든 그렇지 않듯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이 전 생애를 통해 보여준 것은
감동 그 이상의 뜨거움을 안겨다 준 것이 사실이다.
그는 오로지 영혼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그 것을 표출하기 위해 생을 불살랐던 것이다.


그래, 이 지구상에 과연 뜨겁게, 생을 불사르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구절이 생각난다.

타히티의 사람들은 세상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찼다는 것,
사람은 자기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생겨먹은 대로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는 말.

어쩜 사람은 정말 생겨먹은 대로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면 찰스 처럼 하나의 사명감에 사로 잡혀 생을 불사르는 미련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열정은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이 한시도 평안하지 않았지요.
그 열정이 그 사람을 이리저리 휘몰고 다녔으니까요. 그게 그를 신령한 향수에 사로잡힌 영원한 순례자로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그의 마음속에 들어선 마귀는 무자비했어요. 세상엔 진리를 얻으려는 욕망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이 있잖습니까.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갈구하는 나머지 자기가 선 세계의 기반마저 부셔버리려고 해요. 스트랙랜드가 그런 사람이었지요. 진리 대신 미를 추구했지만요.그 친구에게는 그저 한없는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

 
스트릭랜드와는 다른 방법이지만, 예술가의 혼을 지니고 자신만의 인생을 창조한 브뤼노 선장이 느끼는 동정심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일까?

나에게도 진리를 갈구하는 넘치는 열정이 내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게 만들 때가 많다.
나는 바라는 대로 사려고 발버둥 치게 생겨먹은 거겠지? 그렇게 믿고 꿈을 계속 쫓으며 살고 싶다.

 

모든 것을 다버리고 떠난 스트릭랜드가 아니더라도,
부인과 함께 아름다운 섬을 만들어간 브뤼노 선장과는 또 다른 모습이더라도,
나는 나만의 세상을 창조할 충분한 열정과 에너지와 잠재력이 존재하니깐!

 
# Episode 2


세계 대전 때 쓰여진 이 작품은 전쟁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 도피적이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서머싯 몸의 소설 곳곳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고 비평가는 말했다.

그러고 보면, 스트릭랜드의 괴팍한 행동을 더욱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가,
속물적이고 세속적이고 관념적인 인물들이 도드라지게 비취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언뜻 불쌍한 인물처럼 비춰지지만, 남편에만 의지해 살며 스트릭랜드의 삶을 억눌러온 여자 스트릭랜드 부인,
육체적 관능미로 그의 욕망을 흐트러트리는 여자 블란치,
잘 팔리는 그림만 그리는 화가 스트로브 등등등...
심지어 나레이션 마저도 그를 계속 일반적인 사회적 도덕적 잣대를 대며 그를 평가하려 드는 등..
여러 인물들의 관념적인 태도와 사회적 분위기가 그를 더욱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나 역시 똑같은 고민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글의 마지막 쪽에 짧게 등장하는 '아브라함'이라는 의사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아브라함이 돌연, 다른 길의 삶에서 더욱 강렬한 의미를 발견하고 그 삶을 택하였는데
아브라함의 자리에 대신 올라 호위호식하는 인물인 알레 카마이클이 아브라함을 인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묘사하고 다니는 파렴치한 짓을 하고 다녔다는 것.

그래, 온갖 부를 거느리게 된 그가, 그런 호사를 마다한 아브라함이 바보같아 보이겠지.
그게 바로 현실이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그런 아브라함의 행동이 위대해 보였다.



작가의 말처럼, 사람은 자신이 원래 태어나야 할 곳이 아닌 곳에서 태어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끝없이 마음의 고향을 찾아 길을 잃고 헤맬지도 모르겠다.

'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태어난 곳에서도 마냥 낯선 곳에 온 사람처럼 살고, 어린 시절부터 늘 다녔던 나무 우거진 샛길도,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바글대는 길거리도 한갓 지나가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가족들 사이에서도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고,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보아온 주변 풍경에도 늘 서먹서먹한 기분을 느끼며 지낼지 모른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중략) 그러다가 떄로 어떤 사람은 정말 신비스럽게도 바로 여기가 내가 살 곳이라 느껴지는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그곳이 바로 그처럼 애타게 찾아헤맸던 고향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그들이 죄다 태어날 때부터 낯익었던 풍경과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정착하고 만다. 마침내 그는 이곳에서 휴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타히티의 아름다운 풍광,
이를 테면, 아타와 함께 살았던 그 오두막 주변에 빼곡히 둘러싼 야자수 나무와
천연 열대 과일과 남태평양의 선명한 빛깔의 꽃들 그리고 향기로운 향기와 고요한 적막 같은 것...
이런 외향적인 것 뿐만 아니라, 
별애 별 이상한 사람들을 다 만나 왠만한 사람들은 이해하고야 마는 타히티 사람들의 너그러움이,
붉은 수염의 서양인 찰스의 도드러지 괴팍한 성격이 잘 융화되어 보이고,
그 역시 그러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러한 곳이 있을 것이다.

 

나도 때가 되면 그 곳을 찾아 떠나겠지. 이 곳은.. 이 곳은 아닐지 몰라.
그치만, 조급해 하지말자.
천천히 조금씩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반응하는 거야.
몸보다 마음이 앞서지 않을 정도로만 ..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거야.

 

달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금 상기시켜준 소설, 달과 6펜스의 감동이 잊혀지질 않는다.
또 한 번 읽고 싶은 고전의 참 맛을 알려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