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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정길 위에서,/부산, 투박함과 세련됨 사이

콩마을 푸른 밥상_ 서대시장 골목 [Pop Busan Reporter]



등록일자 : 2010-04-22 



 할머니가 차려 주시는 밥상은 어떤 맛으로 기억되는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영화 ‘집으로’에서 할머니가 손자 녀석에서 차려 주시는 밥상처럼, 방금 따온 채소들에 된장을 푹푹 찍어먹는 그런 소박한 맛이 생각난다. 엄마처럼 내 입맛에 쏙 맞는 맛있는 음식 퍼레이드를 내놓을 것 같진 않지만, 신선하고 건강한 자연의 향을 담은 맛이다. 요즘 식당에서는 아지매들의 엄마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많은데 할머니들의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몇 곳 없는 것 같다. 지금, 이런 할머니들이 차려 주시는 푸짐한 쌈 정식을 맛볼 수 있는 ‘콩마을 푸른 밥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 된장찌개 쌈 정식 안에는 큼지막한 새우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꽃게가 들어있다.



 이 곳의 맛 비결은 ‘신선한 재료 공수 및 운영' 이라 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자갈치에서 해산물을, 채소는 김해 농장에서 무공해로 재배한 것들을 공수해다 쓴다. 그리고 나머지 필요한 재료들은 가게가 자리한 서대 시장에서 매일 사서 쓰기 때문에 신선도는 면에서는 최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패스트 푸드가 더 익숙한 나도 최근에 먹은 고추에 된장 발린 반찬 생각만 하면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다. 


▲ 매일 다른 반찬이 올라온다. 오늘은 귀한 고소나물과 시원한 물김치가 일품이다.(왼), 다양한 메뉴가 있는데, 시니어 클럽에서 직접 생산하는 두부와 된장을 주 재료로 하고 채소를 곁들인 것들이다. 



  이런 수고스러움 덕분에 매일 조금씩 다른 반찬을 맛볼 수 있는데 쌈으로 하루는 상추와 치커리, 또 하루는 다시마가 나오더니, 오늘은 ‘고소나물’이 식탁 위에 올랐다. “올해는 종자가 잘 자라서 수확이 좀 많이 났길래, 제가 손님들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스님께 졸라서 좀 얻어왔어요”. 키우는 게 까다로워 깊은 산중에서만 자라는 나물인데, 농장이 아니라 절에서 직접 가지고 온 것이다. 향이 좀 강해 걱정했는데, 보약이 따로 필요 없는 귀한 고소나물을 손님들은 또 어떻게 알아보고 남김없이 먹더라며 웃으시는 실장님. 역시 그 가게에 그 손님이라는 생각을 했다.


▲ 두부로 만든 과자도 판매하고 있다. 흑미를 섞어 고소한 맛을 더했다(왼), 출구엔 책장과 함께 직접 만든 컵과 술을 판매하고 있다.(오)


  
신선한 재료 구매 뿐 아니라 그 날 사용한 재료는 그 날 다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밥 역시 시간대 별로 짓기 때문에 대량으로 만들어 누린내 나는 밥맛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5000원짜리 정식에서 순수 재료비만 4000~4500원 선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운영될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이런 정직함은 콩마을 푸른 밥상이 '장사'를 위한 ‘장사’가 아닌, ‘일하기 위해’ 하는 ‘장사’인 사회적 기업처럼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 지고 운영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 '콩마을 푸른 밥상'이 단순한 식당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설명문.


 이 곳은 노인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복지 사업단인 ‘시니어 클럽’의 한 사업의 일부다. 그래서 실장님을 제외한 식당 운영을 모두 65세 이상의 노인분들이 하고 계신다. 콩마을에서 사용하는 두부와 된장 역시 여기서 운영하는 사업단에서 직접 만든 것을 가져와 쓰고 있다. 채소를 공수해오는 김해 농장도 시니어 클럽에서 철저히 무공해로 어르신들이 운영하시는 곳이다. 하지만, 단순히 노인들이 운영하는 곳이니 어르신들 도와주시는 셈 치고 가서 팔아주자는 수준이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가게의 맛과 운영 방식도 훌륭하며, 오히려 우리가 잊어 왔던 웃어른들에게서 배워야 할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음식을 대접받을 수 있는 곳이다. 


▲ 손님이 없을 땐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일할 때 만큼은 진지하고 신중한 모습이다.(왼), 가게 내부는 좌식으로 깔끔한 인상을 풍긴다. 단체손님을 위한 칸막이도 마련되어 있다.(오)


  오픈 된 주방너머로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깔 웃다가도 손님이 오자 진지하게 음식을 준비하시는 머리가 하얗게 서린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이 곳의 어르신들 더 이상 힘없는 노인이 아니라, 인생의 4번째 막을 시작한 당당한 인격체로 새로 태어난 듯 느껴졌다. 이 것은 음식을 대접 받는 손님뿐만 아니라, 가게를 운영하는 7명의 할머니들 스스로도 느끼는 것이다. 콩마을 푸른 가게의 정명희 실장님은 "여기 나오시는 분들은 그냥 일 하고 돈 벌어 가는게 아니라 자식들한테 손 벌려서 눈치 보는 삶을 넘어 떳떳함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가요" 라고 말한다. 


▲ 시니어 클럽에서 모두 직접 만든 두부과자와 솔잎 주,보리수 주



   콩마을 푸른밥상은 가게를 오픈한 지 2년 6개월 정도 되었다. 하지만 위치가 조금 구석진 곳에 있어 손님이 아직 많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주변에 서부경찰서나 세무서 직원들이 자주 들리는데, 어떤 직원은 매일 월~금까지 점심 식사를 하러 온다고 한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담백한 맛, 건강하고 바른 음식들, 정겨운 할머니들의 건강한 웃음 소리, 그것이 진짜 콩마을 푸른 밥상의 진면모라 할 수 있다. 웰빙이란, 별 게 아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기분 좋게 사는 것이 웰빙. 음식 만드는 사람도 건강하고 먹는 사람도 건강해지는 이 곳에서 우리의 몸과 사회의 건강을 찾아가자. 
 

▲ 콩마을 푸른 밥상의 외관(왼), 서구 경찰서 반대 편에서 쭉 들어오는 길이다. 멀리 골목 끝에 보이는 건물이 서부 경찰서(오)


  
콩마을 푸른 밥상은 서부경찰서 맞은편에 위치한 골목으로 쭉 걸어나가면 나온다. 족발 골목 위로 3블럭 올라와 왼쪽으로 꺽어도 찾을 수 있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서대 시장 안에서 찾기 어려울 땐, 전화 문의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위치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2가 157-1번지
전화) 051-244-6709
 


※ 이 글은 2010년 부산은행이 운영하는 문화포털 사이트 '팝부산'의 문화기자단 2기로 활동하며 작성한 글입니다.